왜 암스테르담은 자유와 관용의 도시가 될 수 있었을까‘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의 기원은 1100년경에 농부 수백 명이 해안에 흙으로 제방을 쌓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지리적, 사회적 조건들 덕분에 생각이나 정체성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협동할 수밖에 없었던 독특한 기질이 정착되었다. ‘병립화[pillarisation] 혹은 네덜란드어로 ‘페르자윌링(verzuiling)’이라고 부르는 사회구조의 형성인 셈이다.이것은 1345년 ‘성체(聖體)의 기적’으로 암스테르담이 알려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중세의 유럽에서 로마 카톨릭교회의 공식 인정을 받은 기적은 오늘날 골드러시와 맞먹는 현상을 불러왔다. 유럽 전역에서 수천 명의 병들고 아픈 자들이 찾아왔다. 도시로 꾸역꾸역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