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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느티나무


「젊은 느티나무」를 처음 읽은 것은 중학시절이었던 듯하다. 그 무렵 신구문화사에서 ‘현대한국문학전집’시리즈로 작품집을 냈는데, 2권에 이 작품이 실려 있었다. 2권에는 유주현과 강신재 작가의 작품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강신재 작가는 잘 몰랐고, 유주현 작가에게 관심이 갔다. 유주현 작가의 『대원군』,『조선총독부』등 역사소설을 관심 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니던 삼촌이 이 시리즈의 책을 몇 권 가져왔는데 나는 이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삼촌은 ‘어려울 텐데…….’라고 하면서 주셨는데, 사실이었다. 유주현 작가는 물론 강신재 작가의 단편들이 모두 읽기가 힘겨웠다. 글의 내용이 대부분 무거웠고,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 책에 있는 작품들을 절반도 읽지 못한 듯하다. 그때 한국문학은 정말 재미없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 책의 작품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 「젊은 느티나무」였다. 주인공은 여고생 숙희다. 그녀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도시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슬하에서 시골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재혼을 해서 서울로 와서 새아빠와 살게 된 것이다. 숙희의 새아빠는 과묵하면서도 온화한 사람이었다. 그도 역시 상처를 하고 대학생인 아들 현규와 살고 있었다. 졸지에 오빠가 된 모범생 타입의 명문대생인 현규와 E여고에서 5월의 여왕에 뽑힐 정도의 미모인 숙희가 주인공이었다. 남남이었다가 부모들의 결혼으로 남매가 된 숙희와 현규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서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형식적으로는 남매가 되었으니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괴로움을 참지 못한 숙희는 외할아버지 집으로 가출을 한다. 시골까지 찾아온 현규가 한 말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때 숲속에서의 일은 우리에게는 어찌할 수가 없는 진실이었다. 우리는 이 일을 잊을 수도 없고, 이제 이 일을 부정하고는 살아가지도 못할 게다. 우리는 만나기 위해서 헤어지는 것이야. 우리에게는 길이 없지 않아. 외국에 가든지……." 그때는 막연하게 외국에만 가면 남매(?)끼리도 맺어질 수 있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 친척 중에도 가깝게 지내던 누나가 있었다. 그녀는 그때의 내게 천사처럼 예쁘면서도 가장 착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이었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외국에만 가면 누나와도 어떻게……. 그런 생각이 스친 듯하다. 그 누나와는 그 이전은 물론 그 이후에도 아무런 사연도 없었지만, 그 누나 때문에 이 작품이 더 강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남매간의 사랑을 다룬 다만「젊은 느티나무」를 읽으면서 그녀를 수시로 떠올렸던 듯하다. 문학이란 별생각을 다 하게 해주는 것인가 보다. 이 책을 펼치니 새삼스럽게 수십 년 동안 만나지 못한 그 누나가 생각이 난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나를 꼭 끌어안으며 이런 말을 했던 것을……. "아유~ 우리 목연이 정말 예쁘다. 이다음에 이런 신랑을 만나는 여자는 정말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잊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말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학생이었던 나와 또래라고도 할 수 있는 그들의 사랑에서 많은 것을 느꼈나보다. 어쩌면 현대문학 작품 중에서 여고생의 사랑을 다룬 거의 유일한 작품인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보았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당시에는 참신하고 세련되게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환경이었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는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재미있게 읽었던 영화를 다시 보면 복장이나 말투가 어색한 것처럼……. 그냥 내게는 옛 애인 같은 작품이니 정이 끌리는 듯하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잘 모르겠다. 작가인 강신재 선생은 2001년에 78세로 작고했다. 지금의 청춘들과는 약간 거리감이 있는 연배인 듯하다. 7080세대라면 옛 사진첩을 보듯 정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문학과 지성사의 한국문학전집 그 31번째 권, 강신재 소설선 젊은 느티나무 .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작가 강신재의 중단편 10편을 수록한 작품집이다. 강신재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관조적인 시선, 지적인 분석력이 단편 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비누 냄새 나는 풋풋한 사랑 이야기에서 끈끈한 점액질 의 어두운 욕망에 이르기까지 운명의 폭력성과 존재론적 한계를 줄기차게 탐구해온 강신재의 소설 여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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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 ( 비누 냄새와 점액질 사이의 거리/김미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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