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던 때는 국민학교 1-2학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학교앞에서 삐약거리던 병아리를 들고 온 다음날 아침, 싸늘하게 식어있던 작은 병아리는 너무나 무서웠다. 잠들기 전까지도 샛노란 털을 보듬어 주었고, 좁쌀과 물도 넣어 주었는데, 그렇게 예쁘고 작은 병아리가 불쌍하다는 느낌보다는 무섭다는 느낌으로 다가와서 울음이 터져나왔었다. 빨리 엄마랑 아빠가 치워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대통령이 죽었다고 주변에 있는 많은 어른들이 눈물을 흘리셨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었기에, 높은 사람이 죽으면 쉬는 날인가 보다는 인식이 더 강했었는지도 모른다. 마흔이 넘어서면서 내 주변에 부고가 자주 들려오기 시작하고 있다. 시큰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몇달전엔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렸을때에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그 무리에 내 부모님이 끼는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와 가까운 분들. 떨어진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리고 쓰려오는 그런 분들. 죽음이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동식물이 아니라, 그런 가족의 죽음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어른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 견디기 힘든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빠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전화를 받는 아빠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온몸이 창백해져 버렸다. 장례식 날, 할머니의 관 위에 놓여진 예쁜 장미꽃 마저도 왠지 슬퍼지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장례식이 끝난 뒤, 사람들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나누다 모두 떠나버리고 만다. 할머니는 어디로 가신걸까? 방학때 가족과 함께 섬으로 여행을 갔을 때, 아빠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천국이군!"하면서 좋아하셨다. 이곳이 천국이라면 할머니가 계시지 않을까? 아이는 생각을 한다. 지금 할머니는 어떻게 하고 계실까? 다시 젊어지셨을까? 그대로 할머니일까? 누구랑 함께 사실까? 혼자 살고 계실까? 눈이 좋아지셔서 바람으로 보이지 않는 스웨터를 뜨고 계실까? 우리 소식을 전해주는 텔레비전을 보고 계실까?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오리고기를 매일 먹고 계실까? 할머니의 친구, 에바 할머니는 다시 만나셨을까? 담배를 좋아하시던 에바 할머니는 담배를 마음대로 피고 계실까? 어쩜, 그곳에서 할머니는 그림도 배우시고 음악도 배우셔서 합창단의 지위를 맡고 계실지도 모른다. 매일 쇼핑을 하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줄서는 걸 싫어 하셨으니까 절대로 줄은 서지 않으실 거다. 어쩌면 할아버지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산책도 하시고 우주선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우주 비행사처럼 몸이 가벼워지셨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할머니는 이제 기억도 없고, 근심이나 소원도 없고, 후회나 피로, 슬픔도 못 느끼고, 아무 생각도 못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할머니는 그저 한 줄기 햇살이나 파도에 이는 거품이나 구름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할머니는 늘 내 마음속에 있을 거고, 나는 할머니를 생각할 거야." 아이가 끌어내는 생각의 나무는 어른들도 생각하기 힘든 성숙함으로 끝을 맺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에 있을 거고, 생각할거라고 말이다. 견디기 힘든 죽음을 설멸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작가가 의도한것 처럼 거죽의 죽음을 경험한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겁을 주는 일은 현명한 방법이 아닐것이다. 책 속 아이는 할머니의 죽음 이후를 아이다운 상상력으로 마음껏 그린다. 그리고 스스로 치유되어간다. 할머니를 생각하고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출판사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책의 각 쪽은 한 가지 색이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데, 이러한 대비는 세부적인 부분이나 표현, 태도 들을 강조하여 유머를 포함해 여러 가지 감정을 고양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다. 짧고 단순하지만, 책속의 삽화와 단순한 색은 시적으로 보이게 하면서도 단 하나로 모든것을 아우르게 만든다. 아빠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전화를 받을 때, 할머니가 즐거워하고 계시다는 상상을 할때, 그 단순함이 짠하게 다가온다. 굉장히 짧은 책이다. 근래에 나온 죽음에 관한 아이들 책중에서도 짧은 책이지만, 죽음이후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신화나 전설속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 것도 아니라 일상을 이야기하 듯 풀어나가고 있기때문에 어린 아이들과 읽기에 부담없는 그런 책이 <할머니는 어디에 갔을까?>이다.
어린 소녀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요?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어린 소녀는 자신이 하느님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조차 잘 모릅니다.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잘 몰라요. 하지만 살아 있을 때 할머니가 좋아하던 것들을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할머니는 젊어졌을까요? 할머니는 혼자 살까요, 할머니의 엄마와 함께 살까요? 우리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어린 소녀는 할머니가 떠나간 곳에서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을 상상합니다. 친구인 에바 할머니와 웃고 떠들고, 오리고기를 실컷 먹고, 그림과 노래를 배우고, 할아버지와 다시 만나 산책을 즐기고, 쇼핑을 하며 동네 아주머니들과 대화를 나누고, 실 대신 바람으로 뜨개질을 하고, 늘 아프던 몸도 싹 낫고…….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친 아이는 할머니가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기분 좋은 걸음으로 다시 현실에 내려섭니다. 아이가 상상하는 장면 가운데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지상에 남겨두고 온 가족을 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